김명남님 번역 대단하다. 90년대 글인데 최신 에세이처럼, 가끔은 아예 고전문학처럼 느껴져.
수줍음도 남들에게 영향을 미쳐요
- 그가 수줍음 탓에 스스로는 남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무력한 존재라 느낄테지만 실제로는 적잖은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남들과 한 방에 있는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
- 조용한 삶과 공허한 삶의 구별
-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 - 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 - 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관계에서 기대와 받음에 대하여
- 엘리자는 자신이 관계에서 더 많은 걸 원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이미 가진 걸 선선히 받아들일 줄 모르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내 욕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채워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거야”
- 어떤 면에서는 논점을 빗나간 얘기다. 엘리자가 존과의 관계를 말할 때 말하는 것은 이따금의 실망이나 흥미의 불일치만이 아니다.
- 엘리자가 스스로 명백히 원하고 필요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존으로부터 얻지 못한다는 것, 존이 엘리자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관계에서 오는 속상함은 내 탓이겠지, 내가 덜 요구하고 덜 바라는 사람으로 변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은 내 욕구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내가 그토록 깊은 수준의 친밀감과 사랑을 원하는 건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내가 불만스러운 것은 솔직히 말해서 내 욕구가 채워지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상대방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특질은 바로 나의 부족한 특질
- 마이클은 다정하고 상냥하고, 농담으로 나를 웃기고, 내 욕구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 마이클은 아주 지적이진 않아. 아주 자신감있지는 않아…
- 내가 이토록 끊임없이 더 많이 원하는 것은 현재의 관계나 마이클에게 정말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고, 타인의 우주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자 하는 바람. 나르시즘, 허영의 기미까지 있다. 아직도 나는 현실보다 할리우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사랑의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
- 내가 마이클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특질들은 대개 나 자신에게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특질들이다.
- 거울을 보며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 한 그 갈망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그저 한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는건 사실 내적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 자신감이 있고 혼자서 진심으로 편안하다고 느낄때면 마이클의 애정을 덜 필요로 하고, 내가 불안정한 상태일 때는 그 갈망이 격화된다.
- 우리가 그저 한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한다는건 사실 내적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을 뜻할 때가 많다.
동성 친구
- 동성 친구와의 관계가 위태로워졌다고 해서 전화번호부에서 ‘우정 상담사’를 찾아보는 사람은 없다.
- 우정은 때로 아주 실질적이고 긴요한 것이지만, 여러 관계들 중에서 가장 일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 여기서 추가되는 문제가 있다. 여자들은 갈등을 꺼리기로 유명하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라는 관계의 쓰레기통.
- 진정한 친밀감에는 당연히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 나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성공하려면 에너지와 헌신과 정직함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늘 알았지만, 우정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황당하게도 오랜 시간이 들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의 기쁨
- (개 반려인 모임 이야기중) 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단순하고 편안한 경우는 드물다. 우리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는 - 일터, 사교모임, 가정에서 - 만남이 날카로운 판단, 불안의 기색, 퍼뜩 떠오르는 자의식으로 점철될 수 있다.
- 나는 매일 잠시나ㅏㅁ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현재에만 집중하고, 훨씬 더 즐거운 관심사를 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얻는다.
딸로서의 나
- 나는 어머니가 혼자 집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움찔하게 된다. 내가 엄마에게 좀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생활을 개선해드려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런 죄책감이 평범하고 오래된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죄책감과 사랑을 본능적으로 하나로 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느 ㄴ긴 시간이 걸린다.
-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것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끝나면 우리의 순수의 시대 중 후반부의 한 단계로 끝난다. 우리 삶이 더 간단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런 통화에는 암호가 듬뿍 담겨 있다. 모녀의 역학 관계를 이루는 물밑 메세지들이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느 ㄴ어머니가 외부적인 문제로 투덜거렸던 것은 자신에게 더 깊은 불안을 안기는 문제-건강, 변함없는 슬픔, 두려움과 회한을- 투덜거리기에는 너무 내밀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서였음을 안다.
- 어느 정도는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그 밑에 깔린 불안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반응으로 불쑥 짜증과 죄책감을 느끼곤 했던 것은, 아마 어머니의 괴로움을 직면한 나 자신이 무능하고 혼란스럽게 여겨져서였을 것이다.
- 어머니의 불안에 괜히 내가 불편한 것, 어머니의 불안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저절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아마도 유아적인) 마음.
부모님의 죽음
- 너무 많은 새벽 5시의 악몽들(엄마가 살아 있는 꿈, 엄마가 죽은 꿈, 우리가 다시 병원에 있는 꿈, 엄마가 죽어가는 꿈, 엄마가 죽어가지 않는 꿈)
거식증의 이유
- 나는 별의별 이유로 굶어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무엇이라도 통제하기 위해서, 분노와 불안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표현하는 대신 내보이기 위해서, 남들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역설적으로 돋보이기 위해서, 한 가지 일에서라도 철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나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질문들
- 나는 자유로운 저녁과 주말을 어떻게 쓰기를 좋아할까?
- 내가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 비율은 얼마일까?
- 나는 타인이 나를 얼마나 접촉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면 좋겠는가?
- 내가 정말로 허기를 느끼는 대상은 무엇일까?
- 나는 무엇에 재미를 느끼고, 무엇에서 위안을 얻고,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일까?
술에 취했을 때 나쁜점
- 중독이 어렵고 고통스런 감정들을 눌러주는 마취제이기는 해도, 그럴 때 우리는 긍정적인 감정들로부터도 차단된다.
- 중독은 즐거움과 기쁨과 놀라움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진정한 친밀감, 진짜 웃음, 진실된 통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오용
- …내가 그런 일을 가능케 할 만한 행동을 했던 게 아닌지, 사귀고 싶다는 신호라도 내보냈던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 실제로 내가 내보낸 것은 다른 신호들이었을 것이다. 불안정의 신호,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신호,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의 신호. 이것은 강력한 감정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포착하는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그들은 인정 욕구를 정확히 가려내고 대상에게 접근한다.
집의 개념을 다시 만들기
- “아, 이게 벽에 걸려 있다면 나는 따스한 느낌, 미적으로 흡족한 느낌, 좋은 취향을 소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텐데. 난 이게 필요해”
입을 옷이 없어
- 이혼을 앞둔 내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지난 7년 동안 기혼자처럼 옷을 입어왔는데 이제 다가오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서는 어떤 모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 이것은 내면과 외면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라고. 친구는 말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과 참는 것
- 분노를 표현하는 것과 참는 것의 상대적 비용을 저울질함으로써 언제 싸울지를 잘 고르는 것이다.
- … 난 친구에게 불만을 삼키고 네 개를 스스로 산책시키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불만을 삼켰다.
- 내가 화를 냈어야 했을까? 만약 그 감정을 표현했더라도 거기에는 또 응분의 대가가 따랐을 것이다.
- 그런 원망은 내면에서 곪았고, 그리하여 불신과 막연한 악의로 관계에 미묘한 악영향을 끼쳤다.
- 밥은 만약 자신이 형제에게 직설적으로 화낸다면 관계가 완전히 끝장날 거라고 혼자 속으로만 걱정하지만, 밥이 지금까지 지켜온 침묵도 비록 조용한 방식일지언정 덜 파괴적이진 않은 방식으로 이미 관계를 좀먹었다.
- 화내는 것이 효과가 있으려면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만핟.
-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