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비기술 발표네요. 준비하면서 저를 많이 되돌아보게 되었고, 덕분에 많이 성장했습니다. 역시 발표는 짱이에요. INFCON 2023에서 한 발표를 스크립트와 함께 공유합니다.
팀 플레이어 101
저는 레진코믹스, 핑크퐁, 제플, 토스 등 다양한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개발을 했는데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성향이지? 어떤 사람이 팀에 임팩트를 끼치지? 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코딩만 잘한다고 짱개발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코딩은 개발자들이 해야 하는 많은 일 중 하나 입니다. 개발자의 필요조건일 뿐이죠. 이런거 머리 싸매고 하다가… 이제 코딩 하면
“휴 좋다~ 쾌적하다~ 나와 컴퓨터밖에 없어~”
하는거죠.
연차가 올라갈수록 이제 코딩 자체보다 이런 코딩 외 개발업무의 비율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합니다. 매니징 트랙에만 해당되는게 아니고, 개발 업무 자체에 이 작업들이 큰 비율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학교나 부트캠프에서 따로 알려주지 않는데 말이죠.
그러면 이런 코딩 외 개발작업은 어떻게 익혀야 할까요?
주위를 보면 존경받는 / 함께 일하고 싶은 / 팀에 큰 전력이 되는 개발자들은 코딩 뿐 아니라 위 역량이 뛰어나더군요. 저 빼고 다 멋진 것 같았습니다.
왜 나는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못하고 어버버 하고 있었을까요? 이게 부정적으로 발현되면, ‘나는 못났어’로 끝날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발현시킬수도 있어요. 걍 따라하는거죠.
할거면 제대로 따라해야죠. 그렇게 일년 반동안 Best practice를 모았습니다.
일단 타인의 팀플레이어다운 행동을 수집했어요. 멋지다 싶으면 적었고요, 따라하기 쉽도록 ‘액션아이템 형태’로 적었습니다.
‘어, 이 사람은 협업이 좀 안된다?’싶어도 적었어요. 반면교사도 적는거죠. 주위에 따라할 사람이 없더라도, 오히려 그게 반대로 따라할 아이디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의 팀플레이어다운 시도도 적었습니다. 남의 행동을 내 방식대로 따라해본거예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시도한것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니까요.
실제 수집한 예시를 볼게요,
“맥북 구매요청을 할 때 본인 뿐 아니라 팀을 챙기고 수치적 근거를 제시한다.”
어떻게 했을까요? 배포 속도가 2분에서 1분으로 줄기 때문에 하루에 배포를 15번 한다 하면 한 달에 300분을 아낄 수 있다. 와 같은 근거를 드는거죠.
이 자리를 빌어 멋진 행동을 보여주신 정연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제가 이렇게 적고 있는거 모르셨겠죠ㅎ
부끄럽지만 저의 시도도 볼게요,
“타 직군의 팀을 한 편으로 만들어 길드로서 미션을 달성하도록 한다”
QA팀에게 서포트 요청이 아닌 공동 목표로서 과제를 만들고, 우리의 성과가 그들의 성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로 인해 결과물도 좋아지고, 연봉협상에서도 두 팀 모두 언급할 거리가 되는거죠. 함께 해낸 회사의 성과니까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이렇게 남의 멋진 행동을 수집한다-가 3년전에 세운 액션아이템이라는 거예요.
‘중니어의 고뇌: 1인분 개발자, 다음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는데요, 과연 저는 답을 찾았을까요? 일단 저기 적어둔 액션아이템은 모두 했네요.
이번 기회에 수집한 행동들을 모두 살펴보았더니, 공통적으로 세 가지 키워드가 나오더라구요. 본질, 관계, 그리고 속마음 입니다. 뭔가.. 개발자 컨퍼런스 발표 아닌 것 같지만.. 맞습니다 ㅎㅎ
본 발표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ㅎㅎ)
Part1. 본질을 알아낸다
여러분이 개발자라면 어떤 응답을 하셨겠어요? 저는 타당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하고, 이렇게 답변했어요.
어때요, 긍정적이고 밝은 프론트엔드 개발자 같나요? 하지만 아쉬운 답변입니다. 요구사항을 1차원적으로 검토한거죠.
다른 개발자의 답글도 달렸습니다.
이 개발자는 현재 상황의 근본 문제를 먼저 파악하고, 본인의 전문성을 더한 방항을 제시했습니다. 개발자가 기획안보다 창의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의 예시죠.
정리해볼게요. 업무 요청이 왔을 때 우리가 프로로서 해야하는 일은 먼저 맥락을 파악하고, 본질을 꿰뚫고, 거기에 나의 전문성을 더해 해결책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코딩이 전부가 아니고 위 작업이 업무의 일부분인거죠.
다른 상황도 볼게요. 내가 낸 개발 버그로 금액 장애가 빈번하게 일어나서 손실이 큽니다. 지난번엔 몇천 단위었는데, 이번엔 자칫해선 억단위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큰일입니다.
‘개발 버그’라는 현상만을 본다면 이렇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실수했네요, 앞으로 더 신경쓰겠습니다”라 하고, 개인적 액션아이템으로 테스트 코드 작성을 하는거죠.
이 대응 역시 문제상황을 1차원적으로 검토했다는 점에서 아쉬운데요, 팀이 QA를 못했다던지 등의 복합적인 원인을 탐구할 기회를 없애버렸네요.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 했으니, 테스트 코드 작성이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주지 않을 수 있고 문제 재발시 개발자 역량 부족으로 비춰질 수 있겠네요.
더 본질을 탐구해볼게요.
개발자의 맥락을 전달하며 문제를 투명하게 드러내 팀의 맥락을 모을 수 있도록 했네요.
다른 동료들이 각자의 맥락을 더합니다.
기능 개발과 코드 개선이 병행되게 하자
-는 일정 관점으로 접근하는 동료도 있고,
금액 테스트를 넣자
-는 최소테스트 관점에서 접근하는 동료,
그리고 손테스트조차 하기 어려운 환경 자체가 문제다. 개발자 의존 없이 기능테스트가 가능하도록 하자
는 더 근본적인 환경개선을 말하는 동료도 있네요.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코어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팀 차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면
문제도 해결하고, 팀워크도 다지고, 팀의 성장도 이뤄내는 일석삼조를 얻을 수 있죠.
Part2. 관계를 알아낸다
많이 겪어본 일이실거예요.
가장 쉬운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죠.
위 두 문제를 해결하는 응답을 해볼까요?
외부사-우리일정-스펙 사이의 관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전달했네요.
많이 겪어보셨을 것 같은 상황 하나 더 들어볼게요.
열정이 앞선 개발자의 가장 일반적인 답변입니다. 노력에는 박수를 주고 싶지만, 아쉬운 점들이 있어요.
두 가지 포인트를 들어 답변을 발전시켰습니다.
Part3.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낸다
마지막 파트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낸다.
우리 팀원이 어떤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는지 궁금한 팀장에게도, 팀장의 목표를 알고 싶은 팀원에게도 필요한 능력이죠. 우리는 물어봅니다.
“요즘 잘 지내세요?”
많이 해보신 질문일거예요. 많이 해보신 답변도 있을거예요.
I’m fine thank you…
이 질문은 ‘음 나 요즘 어땠더라… 힘들었다고 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처럼 생각을 검열하고 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요약해서 답변하게 되어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어려워지죠.
저는 이렇게 풀어보았는데요, 위클리에 역량 체크인이라는 섹션을 도입해서,
- 최근에 해본 노력
- 못 하고 있어 아쉬운 것
- 블로커
를 동료가 선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회고를 통해 내 시도(긍정)와 욕구(아쉬움)를 마주하도록 하는거죠. 욕구는 솔직하게 마주하는것만으로도 미묘했던 답답함이 해소가 됩니다. 게다가 그걸 다른 동료가 공감해준다면? 더 풀리겠죠. 그리고 이게 조직적 문제라면? 협력해서 부셔낼 수 있습니다.
이번엔 좀 더 팀원 관점의 사례를 들어볼게요,
일단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 있습니다.
PM은 고맙겠죠… 다만 평소에 생각해본 질문이 아니라면 의미 있는 답을 주기 어렵고, 답변이 특정 문제에 집중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진실에 다가가기 쉬운 질문은 이러합니다. 앞에 질문보다 답변하기 쉽겠죠? 내 생각을 말하면 되니.
문제 공감대를 맞추고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거예요.
러닝을 정리해볼게요. 포괄적인 질문은 포괄적인 답변밖에 얻어낼 수 없습니다.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질문해주세요. 면접을 볼때도 비슷한데요, 포괄적인 질문보다는 구체적 행동을 묻는게 더 면접자를 끌어내기 쉬운 점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상황 파악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게 더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접근방식이라는것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마무리
여러 사례 듣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 정리해볼게요.
여섯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한 문단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업무 전후에 다음 질문을 되물어보면 됩니다. 사실 셋 모두, 본질을 찾는 여정으로 볼 수 있겠어요.
저도 알아요… 본질 찾기. 말만 들어도 어렵네요. 하지만 해야죠!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많아요. 십년 이상 더 남았습니다. 여러분이 해보실만한 액션아이템이 있어요.
저의 액션아이템도 있습니다.
저의 최근 가치관 형성에 크게 도움을 준 책 세 권을 소개하면서 마칠게요.
감사합니다~ ㅎㅎ